사랑과 나눔의 성직자 김수환 추기경 (1922~2009)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공간인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이 완료되었다.
총사업비 121억원을 들여서 32,132㎡의 부지에 문화시설인 사랑과 나눔공원 17,286㎡, 수련시설인 청소년 수련원 9,322㎡와 주차장 등 부속시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리운영은 천주교대구대교에서 군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게 된다.
정식개장은 이달 27일에 개장기념행사를 시작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철학인 사랑과 나눔 정신을 계승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정신문화 체험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어린시절을 보낸 이곳 군위 용대리 생가 주변에 사랑과 나눔공원을 조성 하였다.
공원은 2010년에 기본구상과 타당성 분석 연구용역을 시작으로 2014년에 실시계획 인가 고시를 하고 2015년 3월에는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하여 군위군과 천주교대구대교구간의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다.
2015년 5월에 착공하여 올 1월에 준공 하였다.
공원은 문화시설인 김수환 추기경 생가, 옹기가마, 추모기념관, 추모정원, 잔디광장,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그리고 수련시설로 청소년수련원, 야외집회장, 운동장, 미니캠핑장, 수련숲 등으로 조성되어 있다.
생가는 원래 있던 건물이 폐가 상태로 주민이 소유하고 있던 것을 2005년 천주교 대구대교구에서 다시 매입하여 초가집으로 재현 하여 관리해 왔으나 지난 2017년 1월에 이곳을 방문한 김관용 경상북도지사가 원래 당시의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도비 2억원을 지원하였다. 군에서 이번에 복원한 생가는 최영식(영남이공대 건축학과 교수) 경북도문화재위원 등 전문가와 주민 고증 등을 거쳐 추기경이 어릴 적 가족이 함께 살았던 1920~30년대 당시 초가집 모습으로 방2칸과 부엌1칸으로 이뤄졌다. 이곳 생가에서는 추기경 선종 이후 매년 2월 16일에 추모 참배 행사를 해오고 있다.
추기경의 집안은 원래 충남 논산군 연산의 양반가문으로 충청도 땅에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의 집안이다. 조부이신 김요안 공은 광산 김씨로 병인박해 때 연산에서 체포되어 서울에서 옥중 순교 했고, 조모 강말손 여사는 남편의 순교 후에 어린 자녀들과 함께 갖은 고생에도 교우들의 뒷바라지를 성심으로 하였으며, 당시 유복자로 추기경의 부친이신 영석(요셉)이 태어 났다. 김영석은 경상도 사목을 담당했던 김보록 신부(대구교구 설립자)의 일을 도왔으며, 동학난을 만나 칠곡 장자동 옹기굴로 피신하게 된다. 이때 뮈뗄과 김보록 두 신부의 중매로 대구의 유명한 신자 집안인 달성 서씨 서용서 회장의 딸 중하(마르띠나)와 혼인을 하였다. 이분이 바로 김수환 추기경의 어머니이다.
그후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의 옹기굴, 대구 남산동을 전전하던 추기경의 부모는 칠곡 신나무골과 선산을 거쳐 1922년 4월 군위로 이사를 오게 된다. 군위에 들어온 해인 1922년 5월8일 (음력)에 낳은 막내가 바로 김수환 추기경이며 추기경은 외가에서 태어났다.
추기경이 8살 되던 해 아버지는 해수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옹기와 포목 행상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었으며, 어려운 형편에서도 이 초가에서 공소를 열었다.
추기경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지금 가톨릭대의 전신인 성유스티노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이 집에서 형인 동한(가롤로) 신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며 신앙과 꿈을 키웠으며 생전에 가끔 이 집을 찾아와 어린 시절을 회상 하셨다.
생가 앞쪽에는 옹기가마를 재현했다.
추기경은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에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 집안으로 부친 김영석옹은 경상도 사목담당 김보록 신부의 도움을 받았으며 동학혁명으로 인해 칠곡 장자동 옹기굴로 피신 하였다. 어머니 서중하 여사도 신자집안인 대구의 달성서씨 집안이다. 추기경의 부모는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 대구 남산동, 칠곡 신나무골, 선산 등으로 이사를 다녔으며 집안의 어려움으로 떠돌이 행상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2년 군위로 이사와서 옹기를 구워 시장에 내다 팔았으며 문화재 발굴조사 결과 당시에 사용했던 옹기가마가 생가 옆에 2기가 발견되었다.
추모정원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과 생전의 말씀내용 등을 타일로 표현 하였으며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새겨볼 수 있다. 평화의 숲에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계단을 만들었으며 계단은 추기경의 연세와 같은 86계단을 조성하여 의미를 더하였다. 추모 기념관은 추기경의 아호인 옹기를 주제로하여 천정에 십자가 모양으로 조명을 설치하였고, 내부 전시자료는 어린 시절부터 사제서품과 추기경 서임과정 등 생애 전반을 생생하게 표현하였으며 동영상 자료와 직접 사용하시던 물품 등도 전시 하였다.
청소년 수련원은 100여명이 동시에 수용가능한 숙박시설과 수련활동 프로그램 운영이 가능하도록 조성 되었다. 숙박시설은 6인실 방이 16개, 식당, 강당, 야외집회장, 운동장, 미니캠핑장, 나무놀이터, 수련의 숲, 암벽등반시설 등을 조성하여 청소년이나 가족이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청소년 수련원은 사랑과 나눔공원과 불과 300여미터 거리에 위치해 있어서 천주교 신자들이나 일반국민들이 함께 찾기에 안성맞춤인 시설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인에게 가장 존경 받았던 사랑과 나눔의 성직자이며 종교와 관계없이 국민 모두가 추앙하고 생전에 남기신 가르침을 되새겨보게 된다. 이제 완공한 사랑과 나눔공원과 청소년수련원에서 누구든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치유의 장소로 각광 받게 될 것이다.
김영만 군위군수는 “모든 국민이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계승하고 확산하며, 사랑과 나눔의 봉사정신을 실천할 수 있는 체험과 수련의 정신문화 공간으로 그 역할을 다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추기경 가계연표
□ 1866년 이전
◦ 충청남도 논산군 연산 지방의 양반 가문
- 조부 김요안(金要安), 조모 강말손(姜末孫)
◦ 천주교가 전파되던 초기에 신앙을 받아들인 순교자 집안
◦ 병인 박해(1866년 고종3년)때 조부 체포, 서울 옥중에서 순교
□ 1866년 ~ 1867년 頃
◦ 추기경의 아버지 김영석(金永錫)옹께서 유복자로 출생
□ ~ 1894년
◦ 김영석 옹은 경상도 사목담당 김보록 신부(대구교구 설립자)를 도움
◦ 동학혁명(1894년)으로 인해 칠곡 장자동 옹기굴로 피신
◦ 신자집안인 대구의 달성서씨 서용서 옹의 딸 서중하 여사(추기경 어머니)와 혼인
□ ~ 1921년
◦ 왜관 평장목, 김천 지대골, 대구 남산동, 칠곡 신나무골, 선산 등으로 이사
- 집안의 어려움으로 떠돌이 행상을 했을 것으로 추정
□ 1922년 ~ 1925년
◦ 1922. 4.18 군위군 군위면 용대동 238번지로 이사
◦ 1922. 5. 8 막내 김수환 추기경 출생 (6남2녀)
※ 외가인 대구 남산동에서 출생
□ 1926년 ~ 1929년
◦ 1926. 5.18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2439번지로 이사
◦ 1929. 8.26 선산군 선산면 동부동 522번지로 이사
□ 1929년 ~
◦ 군위군 군위면 용대동 238번지로 이사
◦ 추기경 8세때 아버지 김영석 옹 해수병으로 별세
◦ 용대리 생가에서 군위보통학교 수료 등 추기경 어린시절 거주
◦ 1929 군위보통학교 입학
◦ 1951 사제서품
◦ 1969 추기경 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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